▲ 50년이 지나서야 그동안 입밖에 꺼내기 조차 힘들었던 4.3 사건에 대한 기념과 희생자의 명예회복과 넋을 위로하고자 세워진 4.3평화공원.
제주도를 떠올리시면 수려한 경관, 아름다운 해변, 신비한 숲, 맛있는 음식이 생각 나실 것 입니다. 저도 제주도를 세 차례 방문하는 동안 제주도를 "좋은 관광지"로만 경험하고, 생각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제주도를 방문해서, 제주도의 아픈 역사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3개의 글을 통해 (1) 제주 4.3평화공원, (2) 함덕 너븐숭이4.3기념관과 서우봉 동굴, (3) 알뜨르 비행장을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오늘은 제주 4.3평화공원을 소개해 드릴게요. 우선 제주 4.3에 대해 간략히 제가 이해하고 있는 내용을 적어 보고, 평화공원 사진을 좀 올려 보겠습니다. 4.3에 대해 쓴 부분이 좀 긴데요, 바로 아래 사진으로 건너 뛰셔도 되겠습니다 ^^
제주도의 요새화
일본이 태평양 전쟁 패망을 앞두고 마지막 보루로 제주도를 진지화 하는 과정 중 제주도민들은 약탈과 유린을 당했습니다. 한때 제주에 주둔한 일본군이 7만 명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당시 제주도 인구가 22만이었으니, 1:3의 비율로 일본군이 있었던 것이지요. 더 설명하지 않아도 제주도민들의 고초가 헤아려 지실 것 입니다.
▲ 일본군 요새로 전락한 제주도: 미군의 오키나와 점령에 따라 제주도를 최후의 보루로 삼은 일본군 (4.3평화공원전시)
실제 조금만 관심을 갖고 여러 관광지와 제주도 해변 등을 돌아보시면, 일본군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는 것을 목격 하실 수 있습니다. 비행장의 잔재, 오름 아래 있는 지하진지, 해변가에 수많은 동굴과 요새 등 (다음글에 소개드릴 서우봉 에서 일본군 동굴을 찾아가보실 수 있습니다).
제주 4.3의 배경
그리고 제주 4.3이 있지요. 제가 이해하고 있는 제주 4.3의 발발 원인은 이렇습니다. 방금 위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제주도민들을 일본군에 의해 많은 고초를 겪었습니다. 하지만 미군정이 시작된 후에도 일제에 협조하였던 사람들이 그대로 미군정 아래에서 권력을 휘두르게 되었습니다.
제주도는 내륙 다른 지역에 비해 반탁세력(미국, 소련에 의한 신탁통치에 대해 반대하고 한반도 내에서 자주적인 정권 수립을 바랐던 세력)이 많았고, 단독선거 반대(남한만의 단독 선거를 치르게 되는 경우 분단이 필연적이라고 생각하여, 단독선거를 반대한 세력) 의견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일제 협조세력 잔존에 대한 불만이 있었고, 반탁운동과(반미 정서), 통일정부 지지의견(분단 반대)이 제주도민 사이에 높았다고 합니다.
▲ 친일 경찰, 관리 재등용 (4.3평화공원 전시)
이승만 그리고 미군정에게 있어 제주도는 골칫거리였습니다. 실제로 초대 제헌의회 구성을 위해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의 감독 아래 치러진 5.10 선거(1948년)에 전국 200개 지역구 중 제주도의 2개 지역구 만이 투표자 수 미달로 무효화 되었습니다. 골칫거리 제주를 어떻게든 처리해야 하는 것이 중앙정부와 미군의 입장이었을 것입니다.
제주 4.3의 발발
제주 4.3의 중요한 기점은 바로 1947년 3.1절 입니다. 광복 후 2번 째 맞는 3.1절을 기념해 제주읍에 약 3만 명의 주민이 모여 기념식을 치르게 됩니다. 기마경찰의 말발굽에 어린아이가 치여 다쳤고, 군중들은 돌을 던지며 항의 하였고, 무장경찰이 발포하여 총 6명의 민간인이 사망하게 됩니다. 15세 학생과 젖먹이 아이를 가슴에 안은 여인도 희생자에 포함이 되었지요.
이 사건으로 제주도 내 민심은 극도로 악화됩니다. 미군정과 경찰은 제주도민에게 사과하거나 사태를 수습하기 보다 시위 주동자나 좌익세력을 검거하는 일에 주력하게 됩니다. 3월 10일 관/민 합동 총파업(파업참석율 95%)이 있었고, 제주 경찰은 이 파업이 북조선과의 통모로 발생했다는 허위 내용을 공표하고, 미군 또한 이를 계기로 제주도를 "빨갱이 섬"으로 규정하여 "좌익의 본거지"로 여기기 시작하게 됩니다.
▲ 4.3사전의 도화선 3.1발포사건 (4.3평화공원 전시)
이 시점부터 경찰과 미군의 탄압이 심해져 1947년 3.1사건 이후 1948년 4.3 발발 직전까지 1년 동안 2,500명이 검속됩니다. 이들 중 고문을 받는 이도 많았으며, 고문 중 사망하는 사람들도 생겨납니다.
4.3, 제주도민의 1/9가 학살당한 사건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한라산 중허리 오름마다 봉화가 붉게 타오르며 남로당 제주도당이 주도한 무장봉기의 신호탄이 올랐습니다. 350명의 무장대는 경찰과 서북청년회 숙소, 독립촉성국민회, 대동청년단 등 우익단체 요인의 집을 지목해 습격했습니다. 4.3 사건 전 기간에 걸쳐 무장세력은 500명 내외였습니다.
하지만 무장세력 500명을 "소탕"하기 위해 희생된 제주도민의 숫자는 25,000~30,000명이었습니다. 제주도민 전체 인구 1/9가 희생을 당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1948-1950년의 제주는 광란 그 자체였고, 학살의 현장이었습니다. 광란 그리고 학살 이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냥" 죽였습니다. 가족 중 젊은 남자가 한동안 보이지 않는다? 나머지 가족들을 잡아다 죽였습니다. 그런 식이었습니다. 그런 상황 아래 수많은 무고한 제주도민들이 희생을 당한 것입니다.
▲ 제주도민의 1/9희생, 희생자 33%가 노약자/여성 (4.3평화공원 전시)
제주4.3평화재단에서 발간한 "제주4.3바로알기" PDF 책자 링크입니다 (링크클릭). 더 관심이 가시는 분은 읽어 보시면 좋겠네요.
제주도에 가셔서 제주 4.3평화공원을 둘러보시며 제주도의 아픈 역사를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인근에 절물자연휴양림, 사려니 숲길, 민오름, 노루생태관찰원이 있으니 동선 짜실 때 참고 하세요.
[1] 제주 4.3평화공원
위치: 제주시 명림로 430
이용시간: 09:00-18:00
휴무일: 매월 첫째, 셋째 월요일
관람료: 무료
문의: 064-710-8461
▲ 4.3이 "이름짓지 못한 역사"라고 써놓은 말. 평화공원을 세시간에 걸쳐 꼼꼼히 모두 돌아본 다음 이 말의 뜻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봉기, 항쟁, 폭동, 사태, 사건 등으로 다양하게 불려온 제주4.3은 아직 역사적으로 정리가 되지 않았다는 것 이고, 그 역사의 정리가 되는 때에 이 비석에 그 이름을 새겨 세우겠다는 것 입니다. 남북 통일 후 그 진정한 이름을 새길 수 있을거라 쓰여 있습니다.
분단 전의 시공간적 상황 속 역사가 분단 후 프레임에 갖쳐 그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었고, 근래에 들어 그 아팠던 역사가 세상에 드러난 것이죠. "남로당", "무장대", "봉기"... 듣기만 해도 섬뜩한!! 지워진 역사, 피해자도 피해를 당했다고 말조차할 수 없고, 울음조차 보일 수 없는 지난 수십년이었습니다.
▲ 4.3사건 진상보고서 중 4.3사건의 정의
▲ 무장대와 협상하여 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자 했던 김익렬 연대장. 인상깊었습니다.
▲ 희생자 이름이 새겨진. 멀리 보이는 비석들이 좌, 우, 뒤로도 둥글게 원형으로 세워져 있습니다.
▲ 희생자 위폐. 안타깝게도, 그 이름의 수가, 위폐의 수가 너무 많습니다.
▲ 위폐 봉안실 입구에 세워져 있는 비석 뒷면에 새겨진 글귀
▲ 행방불명희생자 위령단 조각물
▲ 행방불명 희생자 기념 묘소(가묘): 마구잡이로 수감되어 일부는 육지 형무소 등지로 보내졌습니다. 감금되어 있다가 6.25 발발 직전에 연락이 두절되고 행방불명 된 제주도민의 수가 4천여명에 이릅니다. 대부분 6.25 발발 직후 총살, 암매장 되었습니다. 전쟁이 발발하자 제주도에서 잡아온 "적과 한통속인 빨갱이"들을 처형해 뭍어버린 것 이지요. 4천명입니다.
▲ 유해가 발굴되는 경우 모시는 봉안관입니다.
▲ 유해가 발굴된 현장을 재현
▲ 토벌군을 피해 겨울 한라산으로 도피하다 아이를 안고 사망한채 발견된 여인을 조각화
제주4.3평화재단에서 발간한 "제주4.3바로알기" PDF 책자 링크입니다 (링크클릭). 더 관심이 가시는 분은 읽어 보시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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